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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레알 마드리드

레프트백 나초


최근의 경기들에서 전술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건 전문 레프트백들 대신 센터백인 나초가 레프트백에 서고 레프트백 경험이 많은 알라바가 센터백을 소화한다는 점입니다. 1옵션으로 평가받는 멘디가 꽤 오랜 기간 빠져있다지만, 그간 레프트백을 소화했던 알라바와 미겔의 퍼포먼스가 크게 나빴던 적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두경기 연속 레프트백으로 기용된 나초에 대한 평가가 그리 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안첼로티는 후방 구성에 변화를 줄 생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는 건 안첼로티가 세간의 평과 다른 기준으로, 뚜렷한 목적성을 갖고 이러한 구성을 짜 왔다는 의미인데, 지난 두 경기를 통해 이러한 목적성을 파악해 보겠습니다.


(좌) vs 인테르 라인업 (우) vs 발렌시아 라인업

레프트백 별 히트맵. 전형적인 풀백으로 뛰었던 알라바나 미겔과 달리 나초는 중앙 방향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경기 중 백3 대형


두 경기 간 나초의 기용에 특이점이 있다면 팀이 공을 잡을 때 일반적인 풀백처럼 터치라인을 따라 위아래로 길게 움직이는 대신 아군의 후방 하프스페이스 지역에 기본 포지션을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려와서 수비 대형을 갖출 때를 제외하면 거의 백3의 스토퍼라고 봐도 무방한 동선이었고 팀도 빌드업을 진행할 때나 역습에 대비할 때 백3 대형을 갖추는 빈도가 높았습니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안정성입니다.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알라바를 제외하면 현재 팀의 센터백 중에서 후방에서 안정적으로 전개를 리드할 수 있는 선수는 없습니다. 당장 알라바 없이 치렀던 지난 셀타 전에서 나초가 거하게 사고를 치기도 했었고 크로스가 이탈해있으니 상대가 강하게 압박을 걸어오면 미드필더들이 더 많이 움직여야만 볼을 원활히 전진시킬 수 있다는 시스템적인 문제도 꽤 자주 노출했었죠. 이를 백3를 도입해 후방의 선택지를 한명 더 늘리면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가운데에 선 센터백을 통해 벌려선 스토퍼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의 강도를 줄일 수 있고, 중앙을 틀어막고 측면으로 볼을 몰아가는 압박을 상대할 때도 공 반대편에 위치한 스토퍼를 통해 이를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초는 볼을 전개하는 솜씨는 그다지 돋보이지 않지만 기본기가 꽤 좋고 스토퍼에게 요구되는 전진 역량도 제법 잘 갖춘 선수라 백3에 잘 어울리는 편이고, 나초를 중앙으로 끌어당김으로서 후방에서 가장 볼을 잘 차는 알라바가 백3의 중앙으로 들어와 더 많은 선택지를 쥐게 된다는 부가적인 장점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게 둘의 스타팅 포지션을 맞바꾼 가장 큰 이유일 테죠.



백3 형태는 역습 대응에도 도움을 줬습니다. 후방에 한명을 더 두는 만큼 강하게 압박을 걸 때 그 강도는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압박이 뚫렸을 때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또 셀타 전을 예시로 들면, 센터백 둘을 빼고 전원이 상대에게 바짝 붙어 강하게 압박하는 만큼 상대를 찍어누를 수는 있었지만 한번 압박에 실패하면 아군 골대까지 고속도로가 뚫려 전방으로 나가던 선수들이 전속력으로 돌아와야만 했는데, 뒤에 3명이 남게 되면서 상대가 빠르게 나올 때 지연 작업을 거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상대한 두 팀은 모두 투톱을 쓰는 팀이었기 때문에 투톱에 대한 수적 우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고요. 이를 통해 전방 선수들의 복귀에 대한 체력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으며, 이는 특히 체력적으로 부침이 심했던 발렌시아 전에 더 유효했습니다.



물론 풀백이 줄 수 있는 기여를 포기한 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듯 요새 컨디션이 절정에 올라 있는 비니시우스에게 향하는 지원이 적다는 점은 이 변형 백3의 분명한 한계입니다. 빌드업 시 3-5-2에 가까운 대형을 형성해 비니시우스를 자연스럽게 와이드한 위치에 보낼 수 있다는 건 장점이지만 팀원들의 도움이 없다면 골문 근처로 쉽게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백3를 통해 모드리치의 종적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그걸 모드리치의 측면 지원으로 치환할 수 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좀 모자라죠. 아자르 역시 횡으로 움직이며 비니시우스와 협력할 수 있지만 발렌시아 전처럼 다른 팀원들이 모두 체력적으로 부침이 있는 상태라면 아주 큰 시너지를 기대하긴 어렵고요.


경기별 소유권 상실 횟수 비교. 카르바할이 없으니 상대가 전방에서부터 압박 강도를 끌어올려도 대응할 방법이 없다.
발렌시아 전 전반 카르바할 인/아웃 상황 간 패스맵 비교. 전진도 제대로 안되고 가운데가 텅 비었다.


인테르 전에 비해 발렌시아 전에서 두드러진 부분은 카르바할이 없을 때 백3가 상대 압박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카르바할은 측면에서 볼을 받고 내주는 과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볼을 받아 직접 전방으로 운반할 수도 있고 전체적인 볼 순환 과정에서도 팀내 최고의 보조자입니다. 이런 선수가 이탈했다는 건 단순히 측면에서 전진이 되고 안되고를 넘어 후방에서 측면으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루트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캐치한 발렌시아는 전방에서부터 백3를 강하게 압박했고 연전으로 많이 지쳐 있던 팀은 이를 극복할 만큼 많이 뛸 수 없었습니다. 압박에 시달리면서 전방의 3명과 후방의 7명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고 터치라인을 따라 긴 거리를 오가며 팀을 끌어올려 줄 바스케스는 연이은 실책으로 팀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빡빡한 일정 탓에 매 경기 쌩쌩 달릴 수 없는 팀의 사정을 감안하면 나초를 레프트백에 배치하는 변형 백3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초반 페이스가 살짝 무뎌지고 이탈자들은 깜깜무소식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들을, 조금 답답해지긴 했지만 그럭저럭 틀어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팀이 기대볼 수 있는 비니시우스와 아자르의 공존에 있어서도 백3가 안정성을 더해줄 수 있고요. 다가오는 마요르카 전을 좀 편하게 가져간다고 가정했을 때, 회복을 잘 해서 인테르 전 후반전 정도의 텐션과 압박 강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리고 카르바할의 이탈에 대응하는 약간의 디테일이 더해질 수만 있다면 크로스가 돌아올 때까지 충분히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긴 연휴 덕에 간만에 4시 경기도 라이브로 보고 여유롭게 글을 쓸 짬도 생겼네요. 놀고 자고 하다가 또 밤늦게서야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만... 근황 글에서도 얘기했었지만 이번 시즌은 왠지 모르게 될 시즌일 것 같다는 삘이 있는데 새벽 게임 보니 진짜 그러려나 봅니다. 설레발 떨긴 많이 이르지만 어쨌든 계속 이기니까 기분은 좋네요. 늘 찾아주시는 분들 감사드리고 레알 기운 받아서 명절과 남은 연휴 잘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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