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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레알 마드리드

엘 클라시코 단상

리뷰랍시고 다시 되짚어볼 거리는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짧게 남깁니다.



1. 상대의 요새 분위기랑 이탈자들 고려하면 그냥 힘으로 두들겨팰 수도 있을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도 너무 쫄보마인드로 게임을 짜왔습니다. 크카모로 안정성을 최대한 뽑아먹으려고 한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평소에 그렇게나 강조하던 '앞으로 빠르게 나가기' 를 완전히 포기하고 후방이고 측면이고 끌어올릴 생각 없이 주저앉아서 역습 찬스만 기다리고 있으니 보는 입장에선 되게 답답하죠. 그렇게 엉덩이 뺀 덕에 수비는 그럭저럭 잘 했습니다만 왠지 전력으로 패버리는 것보다 힘을 더 뺀게 아닌가 싶네요. 그 강인하던 비니시우스가 쥐가 나서 나갈 정도였으니...

바르셀로나는 약하다고 물러나 앉으면 진짜 죽도밥도 안될 걸 아니까 레알이 후방에서 볼을 다룰 때 상당히 타이트하게 마크를 붙였습니다. 벤제마의 위치에 따라 센터백이 번갈아가며 커버 롤을 나눠맡던 걸 제외하면 느려터진 부스케츠까지 적극적으로 붙여가며 압박을 걸어왔는데 이게 나갈 생각이 없는 상대를 만나니까 그럭저럭 잘 먹혀듭니다. 뭐 누가 없어서 그렇고 어쩌고 할 수준도 아니에요. 그냥 평소대로 나갈 타이밍에 같이 나가고 끌어올릴 타이밍에 우르르 올라왔으면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인데 딱히 그럴 의사 없이 최소한의 인원만 반응하니까 돌리기만 하다가 뒤로 밀려나서 뻥뻥만 나오죠. 보니까 크로스랑 벤제마 등등 해서 평소에 볼 많이 만지는 몇몇이 아쉬웠단 얘기가 좀 나오던데 이런 건 좀 감안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대신에 저렇게 올려붙이느냐고 뒷공간도 엄청 나오고 비니시우스한테 두명 세명씩 붙여놓고 거기만 보는 수비는 못하니까 비니는 평소보다도 더 날아다녔죠. 혼자서 막을 수 있는 레벨을 넘어섬.


2. 그래도 참작이 되는 건 어쨌든 더비니까. 경기 전 컨퍼런스에서도 본인이 깜 노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단 얘기를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고 항상 나오던 더비에 약하다, 변수를 낼 줄 모르고 맨날 하던것만 한단 악평들도 모르진 않았을 테죠. 가용 자원이 꽤 있었음에도 아주 실리적인 태도로 이길 확률을 끌어올릴 플랜을 짜온 건 이것대로 좋게 봐줄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객관적인 전력 차이가 난다고 해도 원정에 더비 분위기가 휩쓸면 뭔 변수가 일어날 지 모르는데 감독 입장에선 80% 확률로 두들겨패서 이기는 것보단 한끗 차 답답한 양상이라도 90% 확률로 이기는 쪽이 구미에 당길 수밖에 없고 딱 그렇게 해냈습니다. 기질 상 이번에 이렇게 이겼다고 맛들려서 다른 경기들에서도 답답하게 굴 사람은 아니기도 하고요. 물론 위에서 얘기했던 대로 그게 엄청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았다거나 이런 분야 원탑인 지단처럼 게임을 원하는 대로 끌고 갈 필살기를 준비를 했다거나 하진 못했지만 예전엔 이런 거 드럽게 못하던 사람이 이겨보겠다고 이러는 거 보면 좀 신기하긴 합니다.


3. 저는 이게 왜 논란이 되는 지 모르겠는데 발베르데를 호드리구 대신 투입한 건 충분히 할 만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호드리구는 바스케스를 가장 많이 도와줘야 했고 역습에서도 전속력으로 달려나가야 해서 이번 경기에서 가장 체력 부담이 큰 선수였고 60분을 넘긴 시점에선 완전히 지쳐서 퍼포먼스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대는 쿠티뉴를 왼쪽에 두며 바스케스를 더 후벼팠고 팀이 점점 더 내려앉아야 하는 상황에서 벤치에 있던 선수들 중 가장 종적인 기여도가 높은 발베르데가 측면에 투입이 되는 게 이상한 결정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더구나 더비인데요. 바스케스가 벤치에 있는데도 이런 식의 기용이 나왔으면 얘기 나오는게 이해가 가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고요. 평소 안첼로티의 발베르데 기용에 대해 불만이 많은 거야 저도 마찬가지지만 지단도 큰 경기에선 이런 배치를 종종 꺼낸 편인데 크게 얘기 나온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다쳐서 그런건지... 차라리 카마빙가를 왜 투입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성토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 준비하던 게 화면에 잡히기까지 했으니까요.


4. 답답하긴 했지만 나름 짜온 플랜대로 잘 끌고 간 경기이긴 한데 불안 요소를 꼽아보자면 전반전 데스트에게 내줬던 1:1 찬스의 요인들입니다. 기점은 제가 샤흐타르 전 리뷰에서도 얘기했던 상대가 최후방에서 볼을 다룰 때 지나치게 많은 숫자로 롱볼을 유도하는 압박 형태였습니다. 전방 세명이 1차 압박을 시도하고 멘디를 끌어올려 미드필더 세명과 함께 2차 저지선을 형성하니까 최후방엔 세명만 남는데 이 셋이 상대의 3톱을 1:1로 맡아야만 했습니다. 아군 2차 저지선은 어태킹 써드 초입에 자리를 잡고 상대 공격수들은 하프라인 근처에서 볼을 기다리니 그 사이 10~15m는 텅 비어있는데 앞에서 압박을 잘 해서 상대 볼 방향을 측면으로 유도하지도 못하니까 상대 골키퍼가 센터서클 근처에만 공을 떨궈도 수비랑 공격이 1:1로 남는, 다시 말해 수비수가 공격수와의 볼 경합에서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죠. 이게 시즌 초부터 계속 나오는데 고쳐지질 않습니다. 한창 때 라모스 페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비수들에게 매 경기 이런 부담을 지우는 건 너무 리스키하죠. 압박이 확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어쨌든 상황이 벌어졌으니 수습을 해야 하는데 밀리탕이 데파이와의 경합에서 져버립니다. 뒤의 세명 모두 1:1로 붙어있었으니 커버가 될 리 없고 바로 50m짜리 고속도로가 열리죠. 문제는 저런 밀리탕이 그나마 이 팀 수비수들 중 가장 경합에 강한 캐릭터라는 거고 더 큰 문제는 그런 선수가 이번 사례처럼 경합에서 무너지는 빈도가 심심찮게 보인다는 거에요. 경합 성공률 자체는 좋은 편인데 털릴 때 확 무너지는 편이라 임팩트가 강하게 남는 편. 전에 센터백 얘기하면서 밀리탕이 페페와 많이 닮았다고 했었는데 밀리탕이 페페에 비해 확실하게 쳐지는 점을 꼽으라면 몸통의 크기입니다. 둘다 마른 편이지만 밀리탕은 페페보다도 프레임이 더 작습니다. 대신 밀리탕이 위로 솟구칠 때의 탄력이 더 좋아서 공중볼 경합에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편인데 데파이처럼 본인보다 작고 땅땅한 선수와 경합이 발생할 때엔 페페에 미치지 못하죠. 경합에서의 스킬 차이도 아직은 좀 나는 편이고요. 밀리탕 본인도 그런 걸 아니까 프레임이 두꺼운 선수들과 경합을 하면 몸을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깊숙하게 집어넣어서 공을 따내려고 하는데 이러면 파울도 많이 나오고 균형을 잃어 아예 무너지면서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워낙 튼튼한 것 같긴 한데 부상 위험성도 염두에 둬야 하고요. 나무에 몸통박치기를 시킬 수도 없고 당분간은 안고 가야 할 불안 요소인데 결국엔 주변 선수들이 더 도와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밖에는 떠오르는 게 잘 없네요. 팀 성향도 그렇고 구성도 밀리탕이 이런 걸 해줘야 하는 구성이거든요. 카르바할이 돌아오면 좀 힘이 될 텐데... 비단 밀리탕뿐만 아니라 팀이 가진 문제의 상당수가 카르바할이 건강하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카르바할이 건강할 수 있도록 다들 물이라도 떠놓고 빌기라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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