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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경기 리뷰

vs 셀타

황알상

 

 

재능빨 축구

 

라인업

 

감독으로서 안첼로티가 가지는 장점은 뛰어난 전술적 센스와 더불어 선수가 가진 장점을 시스템에 굉장히 잘 녹여낸다는 점입니다. 선수가 갖지 못한 걸 가르친다거나 끌어내는 걸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플랜 하에서 선수의 장점을 최대로 보장한다거나 약간의 아이디어를 접목해 장점을 다른 방향으로 발현시키는 데에 굉장히 능숙하죠. 디 마리아나 하메스를 미드필드에 완벽하게 녹여낸 것, 수비형 미드필더 없이 크로스-모드리치만으로 중원을 구성해 시즌을 꾸렸던 것처럼 마드리드 1기 시절 이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었고, 이는 2기에 들어와서도 유효합니다. 앞으로 달릴 때 가장 빛날 수 있는 선수들을 최대한 빠르게 나갈 수 있게 하는 것. 디테일은 달랐지만 지난 4경기에서 공통적으로 팀이 취했던 스탠스이고 그렇다면 이게 안첼로티 마드리드 2기의 기조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이번 경기에서 안첼로티는 비니시우스와 아자르를 동시에 기용하면서도 둘 중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고 각자의 장점들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끔 활동 영역을 안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직 왼쪽 이외의 영역이 어색한 비니시우스를 왼쪽에 두고 아자르를 벤제마 아래에 배치해 수비를 직접 공략할 수 있게 했고, 제가 여태껏 봐 왔던 두 선수의 동시 기용 중에선 이번 경기가 개개인 활약과 조화 모두 가장 괜찮았습니다. 베일이 아웃된 상황에서 공격진에서 그나마 가장 폼이 괜찮은 두 선수의 활용법을 단기간에 찾아낸 건 확실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런 비대칭 대형은 지단 체제에서도 몇차례 활용된 적이 있습니다. 그땐 아자르나 비니시우스가 왼쪽 측면에 배치됐었고 벤제마 아래 프리롤은 이스코가 주로 배치됐었죠. 지단 시절과의 차이라면, 미들을 두툼하게 쌓고 비대칭답게 왼쪽에 힘을 준 채 그 어그로를 분산하는 용도로 우측을 활용했던 과거에 비해 이번 경기는 비대칭 주제에 우측까지 능동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발베르데는 센터서클보다 터치라인에 더 가깝게 서 있었고, 중앙엔 카세미루와 모드리치만 남게 되어 4-4-2에 가까운 수비 형태를 취하게 되죠. 이 역시 4-5-1에 가까운 수비 대형을 취했던 지단 시절과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수비

 

철저하게 중앙으로 전개하는 루트를 막는 형태의 압박. 미들뿐만 아니라 공격진 두명도 상대의 패스 방향을 제어하는 데 굉장히 열심히 참여했다.
압박의 결과. 상대 중앙 미드필더들의 전반전 패스맵. 왼쪽이 타피아, 오른쪽이 데니스 수아레스. 중앙에서 거의 볼을 전개하지 못했다.

 

수비 대형이 4-4-2로 형성되는 만큼 안첼로티는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길 요구했고 이는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중앙의 두 공격수는 골키퍼와 센터백이 공을 소유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압박을 시도했고 상대의 중앙 미드필더들이 볼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미리 선점해 상대가 후방에서 측면으로 공을 보내거나 롱볼을 찰 수밖에 없게끔 유도했습니다. 셀타엔 탁월한 라인브레이커가 없었기 때문에 압박에 몰려 제대로 타겟팅이 되지 않은 롱볼은 쉽게 따낼 수 있었고 측면으로 전개를 시도할 땐 측면의 두 선수와 가까운 중앙 미드필더까지 달려들어 숫자로 쌈싸먹는 모습이 자주 나왔습니다. 간혹 압박이 뚫려 상대 공격수들이 수비와 바로 마주하는 장면들이 나오긴 했지만 경기 내내 실수가 없을 순 없는 거고 강한 압박으로 얻는 것들에 대한 세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외려 압박이 뚫려 공격당한 것보다 아군 진영에서 나가다가 잘려서 숏카운터 당한 횟수가 더 많을 것 같기도 하고요. 당장 첫골도 그렇게 먹었고...

 

두번째 실점 직전 상황. 경기 중 스위칭으로 인해 블록을 형성하는 구성원이 스타팅과 달라져 있다. 발베르데가 공격진, 비니시우스가 우측, 아자르가 좌측. 지금까지는 사전 약속대로 한명씩 잘 잡고 있다.
다음 상황. 아라우호는 아자르에게 막힌 우고 마요 대신 볼을 받으러 내려온 브라이스 멘데스에게 볼을 전달. 멘데스를 마크하던 미겔이 바짝 따라붙었고 미겔이 지키던 왼쪽 터치라인이 활짝 열렸다. 우고 마요는 이를 보고 스타트를 끊었지만 아자르는 관심이 없고 아스파스를 쫓던 나초는 이를 목격.
미겔이 너무 바짝 붙었다고 판단한 브라이스 멘데스는 아스파스를 향해 볼을 흘려버렸고 아스파스는 열린 공간으로 원터치 패스. 우고 마요는 신나게 달려나가고 아자르는 관심없이 산책. 이미 딸려나온 나초의 불가피한 선택.

 

그러나 이러한 압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게 위의 두번째 실점 상황입니다. 위의 두 공격수가 사냥감을 몰아가는 사냥개라면 아래 여덟명의 두줄 블록은 몰아온 사냥감을 잡는 사냥꾼이 되어야 하는데 아자르는 역할이 순간적으로 바뀐 상황에서도 사냥개처럼 굴었죠. 경기를 라이브로 못봐서 라이브 반응을 좀 찾아보니 이 장면에서 나초에 대한 비판이 많던데 나초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고 봅니다. 이미 아래에서 수적으로 리스크를 지더라도 위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하기로 팀적으로 약속이 된 상황이고 우고 마요가 스타트를 걸고 멘데스가 볼을 흘리던 시점은 이미 나초가 아스파스를 쫓아서 나오던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멈춰서서 우고 마요를 쫓아가기도 애매합니다. 그럴 바에야, 평소 나초의 성향까지 고려하면, 좀 무리하더라도 아스파스의 발에서 공이 떠나지 못하게 하는 쪽이 더 확률이 높은 시도라고 판단할 수 있었겠죠. 본인이 카드를 받더라도 볼만 막아내면 상대 찬스를 끊어내는 거니까요.

 

 

 

빌드업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론 수비 방식보다도 빌드업 과정에서 아쉬움을 더 크게 느꼈는데, 물론 알라바와 크로스가 없고 발베르데가 벌려서서 미드필더 숫자가 부족하고 등등 핑계댈 수 있는 거리는 많았지만 디테일이 조금 더 살아있다면 훨씬 주도성 높은 경기를 할 수 있을 법한 장면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첫 실점 장면처럼 안해도 될 실수로 점수를 내줘 이후 경기 플랜을 무리하게 수정해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을 테고요.

 

첫 실점 직전 장면. 카르바할이 쿠르투아에게 백패스를 했고 밀리탕을 쫓던 산티 미나가 쿠르투아에게 접근. 쿠르투아는 당연히 반대편에 노마크로 있던 나초에게 볼을 전달. 상대 선수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압박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나초에게 볼이 전달된 상황. 아직 아스파스와의 거리가 있고 다른 각도의 산티 미나는 도저히 나초를 압박할 수 없는 상황.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오른발 킥을 할 수 있는 각도로 볼을 잡아놓은 후 파란색으로 표시한 반대편에 있는 선수들에게 볼을 전달하는 것
문제의 상황. 나초는 왼발을 통해 상대 골대 방향으로 볼을 잡아놨고 그 각도에선 왼발 롱킥이 나오는 게 아닌 이상 미겔에게 공을 건넬 수밖에 없다. 허나 미겔에겐 이미 마크맨이 바짝 붙은 상황. 나초는 미겔이 카세미루에게 빠르게 공을 전달하고 카세미루가 전방 선수들에게 공을 보내는 상황을 기대했는지 모르나 이는 폭탄돌리기다.
나초가 미겔에게 공을 건넬 때의 클로즈업 샷.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미겔이 카세미루 방향으로 볼을 보내길 원했다면 미겔의 몸 방향으로 볼을 보냈어야 했다. 그랬다면 볼이 오는 동안 몸의 방향을 바꾸어 왼발로 원터치 패스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나초의 선택은 빨간색 화살표.
예상보다 볼이 너무 짧게 오니까 두 스텝이나 내려와서 왼발로 잡아놓은 미겔. 물론 한 스텝만 내려와서 오른발 원터치로 처리하면 카세미루 방향으로 보낼 기회가 있긴 했다. 그러나 어린 선수에게 그런 임기응변까지 완벽하게 기대하긴 어렵다. 게다가 왼발로 잡느냐고 몸의 방향이 완전히 뒤로 향해 다음 플레이도 제대로 나오기 힘든 상황. 이후엔 다들 아시는 대로

 

첫 실점 장면은 빌드업에서의 디테일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상대가 초반부터 압박을 꽤 거세게 가해오긴 했지만 횡적으로 볼을 돌리는 과정에서 나초는 꽤 여유있게 볼을 받을 수 있었고 볼을 받는 동안 상대 선수들의 위치와 시선 방향을 다 체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무지성 볼처리를 통해 실점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미겔의 후속 대처에도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정식 1군 등록도 안된 어린 친구에게 폭탄을 능숙하게 처리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하고요. 애초에 나초가 여유를 갖고 제대로 볼처리를 했다면 폭탄 처리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전반전 센터백들의 롱패스 시도. 나초 2회 밀리탕 5회
두 센터백의 패스 종류 리포트. 소위 '사이드체인지'라 일컫는 스위치 패스 비중이 극단적으로 적고 땅볼 패스 비중은 극단적으로 높다.
경기 중 롱볼 전개가 가능했던 장면들. (좌) 카르바할(파란색 동그라미)이 노마크로 전방으로 나아가는 중이고 카르바할을 막을 선수들의 시선은 볼 방향으로 향해 있다. (우) 미겔(파란색 동그라미)이 노마크로 대기하는 상황. 미겔을 견제할 수 있는 선수들은 미겔과 멀거나 이미 다른 선수들을 붙잡고 있다. 그럼에도 마크맨이 붙은 벤제마에게 전진패스를 넣었고 받은 후 선택지가 마땅찮던 벤제마가 카세미루에게 리턴을 돌리다 짤려서 역습.

센터백들의 빌드업 과정에서 눈에 띄던 건 롱패스의 비중이 극단적으로 적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나초고 밀리탕이고 딱히 킥력이 좋은 선수들도 아니고 경기 컨셉 자체를 앞쪽으로 볼을 빠르게 보내는 쪽으로 짜오긴 했습니다만 충분히 해도 될 만한 상황, 오히려 하면 더 좋은 상황에서도 롱볼 패스를 자제하는 건 좀 답답하긴 했습니다. 상대는 4-1-3-2 형태로 압박을 걸어왔고 두 센터백과 미들을 꽤 타이트하게 마크했지만 횡적으로 넓은 범위를 압박할 수 없는 대형이기에 골키퍼까지 활용해 횡패스를 돌리다 보면 반대편 측면이 노마크로 남는 상황이 꽤 종종 나왔는데 카세미루나 모드리치가 공을 잡는 게 아니면 별로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발베르데까지 벌려서 좌우 모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앞쪽의 의도를 감안하면 좀 의아하죠. 위의 예시로 올린 캡쳐본들 같은 경우 나초가 아니라 라모스나 바란이었다면 지체없이 볼을 넘겼겠다는 생각을 저만 하는 건 아닐 겁니다.

 

 

 

후반

 

안첼로티가 올시즌 잘하는 건 전반에 드러난 문제들을 후반에 꽤 잘 고치고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번 경기 전반전의 접근 방식이나 특정 선수들의 활용법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스코어도 뒤져 있었고 전체적인 밸런스도 그다지 좋지 못했기에 수정이 필요했고 안첼로티는 몇몇 조치로 밸런스를 다시 잡아내고 대승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아자르의 전후반 히트맵 비교. (좌) 전반 (우) 후반
발베르데의 전후반 역할 변화. (좌) 전반 (우) 후반. 전반의 경우 카르바할(빨간색 동그라미)과 발베르데(파란색 동그라미)가 우측면으로 동시에 올라가는 모습이 많았지만 후반엔 카르바할이 올라가면 발베르데는 무리해서 전진하지 않고 커버 위치를 잡거나 미드필드 숫자 싸움에 가담했다.
모드리치와 카세미루의 전후반 패스맵 비교. (좌) 전반 (우) 후반. 종횡으로 폭넓게 움직이며 패스를 뿌리던 전반전의 모드리치(10번)에 비해 후반전의 모드리치는 비교적 후방에 많이 머무르며 볼을 내보내는 데 주력했다. 반대급부로 전반전 후방에 더 많이 있던 카세미루(14번)는 후반에 모드리치가 내려오면서 전방으로 조금 더 자주 움직였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동점골이 들어가는 바람에 어디까지 변화를 준비했는지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제 눈에 띈 건 이정도 변화였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전반 내내 어태킹 서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아자르의 동선을 우측면으로 제한한 겁니다. 아예 라이트 윙으로 보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활동폭을 우측면에 한정시키면서 좌우의 밸런스를 다시 설정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발베르데가 전반처럼 올라가 있을 이유도 없죠. 전반전엔 기본적으로 카르바할보다 높은 곳에 기본 위치를 잡고 있었지만 후반전엔 필요할 때만 전진하고 조금 더 미드필더처럼 움직이면서 상대 공격에 대한 저지선으로서 기능했습니다.

 

전반에 문제가 많았던 후방에서의 빌드업 문제도 미드필더들의 역할을 조정하면서 해결했습니다. 전반전 두 미드필더는 비교적 같이 움직이려는 성향이 강했고 개중 조금 더 홀딩에 가까운 카세미루가 뒤쪽에서 일차적으로 볼을 받고 모드리치가 전방위로 움직이며 게임을 풀어가는 역할을 맡았는데 후반엔 이걸 서로 바꾸고 각자의 영역도 조금 더 명확하게 나눴습니다. 모드리치가 수비 앞쪽에서 볼을 받아 앞으로 연결하는 빈도가 늘어났고 그러는 동안 카세미루는 미드필드에 남아 볼을 받아주고 앞선의 선수들에게 열어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대신 앞쪽 선수들이 위에서 기다리기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려와서 볼을 수급해갔고요.

 

후반 시작하자마자 스코어를 따라붙고 위치와 역할 변화로 좌우와 공수의 밸런스를 다시 잡게 되면서 팀의 유기성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전반이 비교적 앞만 보고 돌진하는 느낌이었다면 후반은 밀당을 능수능란하게 시전하는 느낌. 비니시우스의 역전골도 최전방과 최후방 간 간격이 전반에 비해 줄어들면서 루즈볼을 탈취해 상대가 다시 정비하기 전에 빠르게 전방으로 연결하면서 나온 골이었죠. 역전 이후 카마빙가가 들어오면서부턴 제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14-15시즌의 모습도 얼핏 보이는 듯 했고요. 아직 어린 티가 많이 나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데뷔전부터 쫄지 않고 본인이 가진 걸 그라운드 곳곳을 누비며 펼쳐내고 기어이 골까지 넣는 걸 보며 난 놈은 난 놈이구나란 생각을 했었네요.

 

 

A매치에 다녀온 몇몇 선수들 몸상태가 걱정이 좀 되긴 하지만 오랜만에 팬들이 직관하는 환경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실점들이 하나같이 나사빠진 것들이긴 했지만 대신 득점도 상당히 양질의 과정을 통해서 나온 것들이었고 앞으로 있을 빡빡한 일정에서 선수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리기엔 아주 좋은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같아선 비니시우스랑 카마빙가 얘기도 좀 더 하고 싶은데 오늘 백신을 맞고 왔더니 팔이 욱신거려서 쟤네 얘기는 나중에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하는 거 보니 조만간 기회가 올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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