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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경기 리뷰

1라운드 얘기 짧게

원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짧게 풀어 봅니다.



전반만 보면 저처럼 레알을 떠난 안첼로티가 어떤 축구를 했길래 가는 곳마다 욕을 얻어먹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아!' 를 외칠 수 있게 해주는 양상이었습니다. 지단 마드리드의 문제를 측면 자원들이 종적으로 지나치게 긴 거리를 너무 빡빡하게 오갈 것을 강요받기 때문에 공격진의 자유도와 유기성이 떨어지고 팀 템포가 느려지는 데서 찾은 것 같은데 그에 대한 답이 지단을 답습하는 것만도 못했습니다.

 

전반전 오픈플레이 크로스. 단 3개
전반전 히트맵. 측면 깊숙한 지점으로 아예 전진을 못했다.


공격진의 종적인 이동 거리를 줄이고 높은 위치에서 볼을 받게끔 해서 전방으로 나가는 볼의 템포를 올리고 좌측 하프스페이스를 기점으로 벤제마와 아자르의 스위칭을 자주 걸어서 상대 중앙 블록을 흩뜨리면 좁게 선 베일과 아자르가 속도로 중앙을 바로 파고드는 식의 공격 플랜을 짜왔는데 이게 굉장히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상대가 초반부터 압박을 강하게 걸어오니까 전방으로 빠르게 볼을 굴리지 못해 공격진이 볼을 받을 땐 상대 수비가 다 갖춰진 경우가 다반사였고 종적으로 빠르게 전진하는 데 실패했다면 측면을 타고 전진해야 하는데 측면에 배치되는 인원이나 볼의 타이밍과 위치가 너무 뻔해서 속도가 아예 죽어버립니다. 측면에서 볼을 잡은 풀백들이 어쩔 수 없이 중앙으로 볼을 다시 넘겨봐야 양 메짤라는 커버에 대비해 수동적인 스탠스로 일관하고 방향을 컨트롤할 중앙에 서는 선수들은 상대가 측면으로 넘어오는 볼을 다 대비하고 있으니 의미없는 횡패스의 비중만 높아지는거죠. 자연스럽게 공격진의 중앙 콤비네이션만 바라보게 되고 좌우측은 사이드체인지도 못하고 따로따로 동서로 절단이 나버립니다.

후반 오픈플레이 크로스. 3개→9개
후반 히트맵. 측면을 타고 전진이 되니 상대 박스에도 손쉽게 접근이 가능해진다.
중앙에서 볼을 자주 잡던 아자르, 벤제마, 카세미루의 패스맵. (좌) 전반 (우) 후반. 전반에 비해 후반에 패스 길이가 길어지고 횡패스보다 대각선패스가 늘어났다.
알라바와 바스케스의 패스맵. (좌) 전반 (우) 후반. 횡패스 일색이던 전반에 비해 전진패스 비중이 훨씬 늘어났고 크로스 빈도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전반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후반에 수정을 잘 하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측면이 아예 죽어서 힘들었다는 점을 파악하고 중앙에 서는 선수들에겐 측면으로 때려넣는 패스의 비중을 늘리도록, 측면 유닛들에겐 조금 더 자유로운 움직임을 허용하면서 속도를 살리게끔 했고 측면 깊숙한 곳까지 볼이 속도가 산 채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크로스 비중이 높아집니다. 이번 경기 득점은 모두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 혹은 측면으로 넓게 벌린 윙어들의 영향력에서 비롯된 공격 작업에서 나왔고 세트피스였던 나초의 골을 제외하면 모두 상대가 제대로 자리잡기 전에 속도를 살려 공략한 크로스들이었죠. 따지고 보면 나초의 골이 나왔던 코너킥을 얻어낸 장면도 이에 해당하는 사례이니 네골 모두가 그러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팀의 수비 시도. (좌) 전반 (우) 후반.


수비에서도 전반보단 후반이 더 나았는데, 전반엔 종적으로 빠르게 전진하기 위해 상대를 위쪽에서 끊어내려는 시도가 많았고 전방에서 상대를 측면으로 몰아간 후 측면에서 달려들어 공을 잘라내는 수비 방식을 선보였습니다. 압박 강도나 대형이 허술한 건 시즌 극초반이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좀 위험하다고 봤던 건 카세미루의 커버 범위인데, 최대한 위쪽에서, 최대한 측면에서 끊어내려고 하다 보니 카세미루가 지나치게 높이, 횡적으로 지나치게 멀리 나가는 빈도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밀란과의 경기에서도 터치라인까지 나와서 상대를 압박하던 모습들이 자주 보였는데, 물론 카세미루가 기본적으로 커버 범위가 굉장히 넓은 선수이긴 하지만 그 거리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커버의 밀도가 낮아지는 건 당연한 이치죠. 더구나 카세미루가 다른 수미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수비적으로 센터백 라인과의 호환과 커버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데 있는데 커버 범위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이러한 장점을 끌어내기는 어려워집니다. 실제로 페레 폰스에게 내줬던 전반전 가장 위험한 찬스에서 카세미루는 볼을 끊어내기 위해 상대 박스 앞까지 전진했다가 나초가 경합에 실패해 뒤를 활짝 열어줬을 때 제대로 커버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고요.

이런 문제들이 눈에 띄자 공격 방식을 바꾸는 김에 수비에도 손을 댑니다. 중앙을 통해 종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것 대신 측면에 힘을 주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위치에서 압박하는 걸 포기하고 메짤라들의 커버 부담도 줄여줍니다. 대신 측면에서 중앙으로 나오는 길목을 좁히고 공이 나오는 자리에 카세미루를 배치해 수비라인 앞쪽에서 상대의 공격 속도를 늦추는 데 주력합니다. 위의 그림을 보면, 물론 벌어진 스코어때문에 자연스레 수비라인이 내려온 영향도 있겠습니다만, 전반에 비해 후반의 팀의 수비 시도들이 하프라인 아래쪽에, 좌중우로 보면 중앙에 많이 몰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려 이렇게 좁혀놓으니까 카세미루가 나오는 볼들을 다 잘라먹으면서 종으로 볼을 내보내는 속도가 더 빨라졌죠.


보기에 불안한 점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곧 올라갈 센터백 얘기에서도 할 얘기지만 후방에서 강하게 압박을 받을 때 나초와 밀리탕이 볼을 올려보내는 과정은 그다지 깔끔하지 못했고, 발베르데나 바스케스같이 본인이 처음 다뤄보는 선수들은 확실히 파악이 덜 됐구나 싶은 지점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첫술에 이 정도라면, 한물 갔다는 평을 들어오던 감독의 데뷔전치고는 상당히 훌륭했다고 할 수 있겠죠. 특히나 후반에 시도한 변화들은 아직 감이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는 걸 스스로 입증한 거고요. 부임 이전 문제로 꼽혀오던 부분들은 남은 이적시장에서의 보강과 이 팀 선수단의 퀄리티로 어느 정도 극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저의 기대를 약간은 충족시켜주는 장면들이 나와서 저는 괜찮게 봤습니다. 팀과 좋은 기억이 있는 감독이고 1기 부임 기간동안 팀과 워낙 잘 맞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줬기에 이번에도 그 시너지를 잘 살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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