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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레알 마드리드

호드리구 이야기

음바페를 제치고 챔스 최연소 퍼펙트 해트트릭 기록을 갈아치운 호드리구



호드리구가 선수로서 갖는 장점은 나이 대비 기술과 측면에서 속도를 내는 메커니즘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는 점입니다. 볼을 받을 때와 터치할 때 상당히 부드러운 동작으로 공을 발에 붙일 수 있으며, 속도를 내면서도 공이 튀거나 발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하는 빈도가 적은 편입니다. 정면을 바라보면서 드리블을 치다 가벼운 바디 페인팅과 함께 발 끝만으로 볼 방향을 바깥쪽으로 바꿔 치고나가는 본인만의 시그니처 무브도 갖췄고요. 이런 기술적 요소들을 뒷받침할 피지컬 요소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비교대상이 비니시우스라 별로 고평가받지 못하지만 비니시우스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스피드의 3요소-최고 속도, 폭발력, 어질리티-를 꽤 준수하게 갖추고 있고, 무게중심이 안정되어 있어 방향 전환이 원활합니다. 때문에 호드리구는 속도를 붙인 상태에서도 공과 함께 수비를 스무스하게 벗겨내는 게 가능하고 공을 자기 간격 안에 둘 수 있으니 다음 플레이를 가져가기도 수월한 편이죠.

호드리구의 1군 데뷔골 vs 오사수나(19/20 리가 6R). 상술했던 기술적 강점이 이 골에 모두 응축되어 있다.



더불어 기본적으로 볼을 쥐고 하는 플레이에 있어서는 패스든 킥이든 크게 모자람 없이 두루두루 다 그럭저럭 하는 편이고 연계에 대한 이해도와 움직임에 대한 센스가 있기 때문에 여느 드리블 좀 친다는 유망주들처럼 상대 수비에 무리하게 꼬라박는 빈도가 적고 주변 동료들을 활용하면서 상황을 풀어나오려는 빈도가 높은 편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2대1 패스를 통해 수비를 헤쳐나오거나 근처의 공을 잡은 동료의 선택지를 확보해주기 위해 더미 움직임을 가져갈 줄도 알고요. 무엇보다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 호드리구의 영리함이 가장 돋보일 때는 팀이 필드의 다른 곳에서 어그로를 끌고 있을 때입니다. 상대 수비가 팀 동료들에게 시선이 쏠렸을 때 수비수들의 시야 밖에서 위험 지역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실제로 호드리구가 이 팀에서 넣은 득점들을 보면 대다수가 수비 뒤쪽에서 튀어나와서 볼을 받아 마무리하는 장면들이고, 호드리구의 득점이 몰려 있는 시기는 아자르가 이 팀에서 아주 잠시나마 정상적인 활약을 하던 시기라는 게 이를 방증합니다.

아자르와 호드리구의 히트맵 비교. (좌) 아자르 vs 소시에다드(19/20 리가 14R) (중) 호드리구 vs 알라베스(19/20 리가 35R) (우) 호드리구 vs 에이바르 (20/21 리가 14R)
호드리구의 라이트 윙에서의 다양한 활용 방식. (좌) vs 샤흐타르(20/21 챔스 조별 5R) (중) vs 갈라타사라이(19/20 챔스 조별 4R) (우) vs 카디스(20/21 리가 31R) 네모-패스 세모-드리블 동그라미-슛 초록 테두리-성공 빨간 테두리-실패 파란 테두리-골


이런 장점들 덕에 호드리구는 좌우 편차가 적고 다재다능해 포지션과 롤에 비교적 덜 구애받을 수 있다는 점과 팀 차원에서의 리소스를 많이 받지 않더라도 일정 수준의 활약을 보일 수 있다는 전술적인 장점을 가집니다. 똑같이 라이트 윙으로 나와도 팀이 준비한 경기 컨셉에 따라 유사 바스케스로도, 보조 스코어러로도, 엠게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처럼 주공의 한 축으로서나 최근 카디스 전처럼 우측에 기반을 둔 프리롤로서도 활용이 가능하고 정말 어쩔 수 없이 나온 거긴 합니다만 헤타페전처럼 아예 미들로도 활용할 수 있죠. 그 과정에서 딱히 리소스를 크게 잡아먹지도 않고요. 레프트에 나올 경우 호드리구가 비교군에 비해 우위를 갖는 점은 대각선 동선을 자연스럽게 탈 수 있고 그를 통해 하프스페이스에서 동료들과 다양한 부분전술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예 하프스페이스에서 주로 볼을 받아 플레이를 시작하거나 거기서 속도를 주도적으로 끌어올리는 수준엔 이르지 못하지만, 하프스페이스를 어느 정도 유의미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로스와 벤제마에게 좋은 선택지가 된다는 점, 그리고 이게 지단이 아자르를 원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걸 감안하면 이는 향후 레프트 경쟁에서 호드리구가 가질 강력한 무기가 될 겁니다.



그럼에도 호드리구가 레프트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라이트를 전전하는 건 앞서 열거한 장점들이 어디까지나 대부분 '나이 대비' 이기 때문입니다. 비니시우스처럼 연령대를 뛰어넘어 성인 무대에서도 어필이 가능한 무기가 현재로선 크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외려 스트렝스나 근지구력같은 몇몇 피지컬 요소들은 나이 대비란 표현을 붙이더라도 좀 아쉬운 편이고, 때문에 경합에서 일관성을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술적으로 상당히 좋은 자질을 지니고 있지만, 본인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으면서도 본인보다 체구가 큰 상대를 만난다거나, 종적으로 동선이 길어진다거나 경기 출장 간격이 빡빡해지거나 하면 온볼 플레이의 질이 확 떨어지는 게 바로 티가 납니다. 본인도 그걸 잘 알다보니 원래도 막 적극적인 선수는 아니지만 그런 날에는 선택지의 폭이 확 줄어드는 경향을 띄고요.



여기서 파생되는 잠재적? 어쩌면 이미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만한 약점이 바로 캐리력에 관한 것입니다. 좋은 기술과 다재다능함을 통해 적은 리소스 투자에도 괜찮은 효율을 뽑아낸다고 해서 많은 리소스를 투자했을 때에도 그 효율을 살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같아봐야 비니시우스처럼 세팅을 잡아주고 해봐야 별다를 것도 없을 거에요. 가진 걸 잘 완성시키면 포스트 네이마르 포스트 아자르가 될 수 있는 선수지만 지금처럼 다재다능이란 명목 하에서 어정쩡한 부품으로 제한적인 기회만을 부여받는다면 본인의 능력을 만개시키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전방에서 볼 흐름을 주도하면서 크랙으로서 상대 진영을 휘젓는 것도 해본 놈이 하는 건데 상술했던 피지컬 문제들이 시간이 지나며 해결이 되더라도 지금까지의 경험치로는 그게 그리 쉬워보이지가 않습니다.



결국 남는 건 너무 일찍 온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입니다. 비니시우스와는 좀 다른 이유에서지만 비니시우스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들이받기'의 부재가 호드리구에게도 동일하게 아쉬움으로 적용되는 거죠. 비니시우스만 해도 솔라리 밑에서 조금이나마 그럴 기회가 있었다지만 호드리구는 브라질에서도 좌우를 오갔던 게 현실이니까요. 본인의 기술과 피지컬이 먹힐 만한 레벨에서 '들이받기'를 충분히 시도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게 브라질이 되었든 다른 유럽 무대가 되었든, 하다 못해 카스티야가 되었더라도, 그럴 수 있었다면 캐리력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 수 있었겠죠.

엠게전 데이터. (좌) 좌우 유닛(멘디-크로스-비니시우스/바스케스-모드리치-호드리구) 간 히트맵 비교 (중) 레알의 크로스 시도 (우) 호드리구 히트맵
에이바르전 데이터. (좌) 레알 팀 히트맵 (중) 호드리구 개인 히트맵 (우) 호드리구 개인 스탯. 네모-패스 세모-드리블 동그라미-슛 초록 테두리-성공 빨간 테두리-실패 파란 화살표-막힌 슛 노란 화살표-어시스트


12월의 짧은 활약과 장기부상은,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아자르의 잇따른 이탈과 비니시우스의 부진으로 팀내 입지가 상대적으로 올라왔었고, 본인도 그걸 소화할 수 있는 몸상태를 만들었었기 때문입니다. 엠게와의 챔스 마지막 경기는 지단이 작정하고 우측을 후벼팠던 경기였고 호드리구는 주공의 한 축으로서 지단의 의도를 만족시키는 좋은 움직임과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했었습니다. 여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두경기 후 에이바르 원정에선 아예 왼쪽에 배치해 크로스·벤제마와 호흡을 맞추게 했고 여기서도 팬들과 지단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활약을 보였습니다. 개인 히트맵에서도 대각선 동선과 하프스페이스 공간을 잘 활용한 게 보이고 슈팅 존도 골대와 상당히 밀접한 위치에 형성되어 있고요. 득점은 없었지만 이 경기에서도 좋은 패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기세가 좋았기에 바로 다음 경기에서 당한 장기부상이 더욱 아쉽습니다. 그 부상 이후로 12월달의 몸상태를 다시 찾지 못하고 있으니 더더욱이요.



아쉬움도 부침도 많은 시기이지만 그래도 기대를 걸어볼 건 호드리구가 비니시우스보다도 더 어린 나이라는 점입니다. 이제야 만 19-20세 시즌을 보낸 거고 대다수의 동년배들은 아직 1군 데뷔도 못한 시기라는 걸 감안하면 이정도야 성장통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거죠. 다만 12월에 왔던 기회를 놓치면서 팀내 서열에선 여전히 입단 당시와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20대에 들어서는 만큼 팀도 본인도 한번쯤은 환경의 변화를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스케스가 나가게 되면 호드리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기야 하겠지만 팀이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의존도가 그리 큰 것도 아니고 소문대로 음바페가 와서 한자리를 붙박이로 먹어버리면 호드리구의 서열은 더 내려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이러한 변화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팀내 교통정리가 확실하게 되어야 합니다. 사실 아자르만 멀쩡했다면 진작 서열정리가 끝났을 테고 선수 개별로 성장 방향 확실하게 잡아서 진로를 정해줄 수 있었을 텐데 아자르도 망하고 코로나도 겹치면서 상황이 어정쩡해진 거니까요. 아마 임대 매물로 나온다고 하면 가진 게 굉장히 많은 선수이니만큼 인기는 정말 많을 텐데 혹시라도 정말 임대로 기회를 챙겨주려 한다면 그간 삽질들을 발판삼아 재능을 최대한 잘 끌어내줄 곳으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어정쩡한 선수로 남기엔 너무나도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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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늦어도 챔스 4강 전에는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슈퍼리그 사태 터지고 어쩌고 하다보니 5월이 되어버렸네요. 쓰고 보니 별로 길지도 않은 글인데 뭘 그렇게 질질 끌었는지.. 기다리시던 분들껜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다음 글들은 일단 아자르-아센시오 관련 얘기와 센터백을 비롯한 후방 자원들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하는데 혹시나 특정 주제들에 대한 제 의견이 궁금하신 게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댓글로 답변드릴 수 있는 것들은 댓글로 답변을 드리고 좀 길게 얘기해야 할 사안들이 있다면 고려해서 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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