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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경기 리뷰

vs 맨체스터 시티(H)

라인업

 

 

양팀 다 변칙 없이 가용 상 최선의 라인업을 들고 나왔습니다. 마드리드는 모드리치 이탈 이후 크로스와 추아메니의 더블 볼란치를 준비하는 듯 했으나 모드리치가 예상보다 일찍 복귀하면서 추아메니를 벤치로 다시 돌려보냈고, 밀리탕의 공백은 뤼디거로 메웠습니다. 시티는 아케의 이탈로 공석이 된 왼쪽 센터백에 왼발잡이인 라포르테를 배제하고 오른쪽 센터백이던 아칸지를 세우고 오른쪽에 워커를 배치했습니다. 일찍부터 예상되었던 4강 상대인 마드리드의 비니시우스를 의식한 안배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티의 플랜

 

 

전술적인 관점에서 22-23시즌을 바라볼 때 시티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시티가 후반기에 보여주고 있는 시스템은 기존 시티가 갖고 있던 퀄리티를 계승하면서도 때때로 발생하던 비효율적 요소들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는 데에 가장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를 제 나름대로 풀어 설명하자면, 좋은 선수들과 좋은 시스템을 통해 후방에서의 최대 효용을 달성, 즉 보다 적은 숫자로도 최적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그 남는 여력을 전방 인원 확충과 효율적인 공간 분배로 치환합니다. 더불어 홀란드라는 무게감 확실한 스트라이커를 확보해 상대 수비 시선을 지속적으로 끌어당길 수 있으니 후방에서 볼이 넘어오는 속도도 빨라지고 볼이 순환되는 과정에서 약간의 틈만 보여도 예전에 비해 더 위협적인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로드리(좌)와 스톤스(우)의 히트맵. 3선 미드필더임에도 마드리드의 박스 앞 공간을 제집 드나들듯 활보했다.

 

이 강력한 시스템은 이번 경기에서도 시티의 주도권 확보에 기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다수의 공격 숫자가 확보가 되니 상대 수비 라인을 뒤로 물러나게 하기가 쉽고, 중앙에도 많은 선수가 배치되니 미드필드를 장악하기에도 용이합니다. 시티가 동점골을 넣고 내려서기 전까지 기본적인 게임 양상은 계속 이러했습니다. 마드리드의 수비 라인은 계속 내려서있고, 미드필드에서도 수적 열세에 놓여 있는데 발베르데는 귄도안을, 크로스는 더브라위너를 내내 시선에 두어야 하니 조금 더 전방에 배치된 모드리치는 로드리와 스톤스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시티의 두 3선 미드필더는 너무나도 쉽게 전진할 수 있었고 모드리치를 비롯한 마드리드의 2선 선수들은 이 뒤를 쫓기 바빴습니다. 시티의 이러한 수적 우위를 통한 전진은 비단 중앙에 국한된 게 아니었는데, 가령 워커의 경우 스톤스와의 협업으로 비니시우스를 사이에 두고 수적 우위를 만들어 비니시우스의 시선을 피해 비니시우스의 등 뒤로 손쉽게 전진하여 공격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마드리드의 플랜

 

크로스와 모드리치의 수비 시도. 왼쪽 측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비록 홈이지만, 경기의 주도권을 시티가 가져갈 거라는 건 마드리드도 충분히 상정했을 겁니다. 때문에 마드리드의 경기 플랜은 평소에 비해 다분히 수동적인 방향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가장 중점을 뒀던 건 미드필드를 내주더라도 본인들의 박스 앞쪽 공간을 단단히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상대 에이스인 데브라위너의 주 활동 공간인 마드리드의 왼쪽 하프스페이스 방비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앞서 언급했듯 크로스와 발베르데는 경기 내내 더브라위너와 귄도안을 시선에 두면서 움직였고, 모드리치는 미드필드에서의 견제에 실패하면 바로 왼쪽 하프스페이스로 내려와서 크로스와 타이트하게 간격을 유지하며 공간을 메웠습니다. 이 과정에서의 집중력은 상당히 좋았습니다. 좁은 공간을 빽빽하게 메워 기동력의 열세를 가렸고 상대 선수가 시야에서 벗어나더라도 패스가 빠질 수 있는 공간을 선점하면서 상대의 전진 패스 시도를 미연에 차단했습니다. 이렇게 3선에서 상대의 교란 시도를 잘 틀어막아 주니 마드리드의 양 풀백은 본인들의 시선을 상대 윙에게 온전히 고정할 수 있었고 핵심 구역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홀란드에게 볼을 전달하지 못한 시티는 공격의 마무리를 박스 밖에서의 중거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칸지와 귄도안의 패스맵. 아칸지는 왼발 활용에 서투른 선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고 귄도안은 왼쪽으로 향하는 패스의 비중이 극히 낮다.
아칸지한테 공이 가봐야 별거 없다는거 파악하고는 그쪽으로 눈길조차 안준다.

이런 흐름에서 마드리드가 굉장히 잘 캐치한 것은 상대 주공을 잘 통제했을 때 새로운 위협이 될 만한 반대 방향의 상대 조공의 위력이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아칸지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주 본 선수는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꽤 좋은 선수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이번 경기 왼쪽에서 볼을 전개하는 데에는 상당히 서툴렀습니다. 제가 예전에 센터백에 대해 작성했던 글에서 언급했던 얘기처럼 왼쪽에 서는 선수가 왼발 방향으로 볼을 갖다놓는 동작이 어설프니까 전개의 속도와 정확성이 떨어지게 되는 겁니다. 패스맵에서 이게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패스의 정확도 자체는 상당히 높습니다만 패스 비거리가 상당히 짧고 측면으로 향하는 패스들의 각도도 종 방향보단 횡 방향에 치우쳐 있습니다. 이렇게 아칸지가 측면 전개에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하니까 귄도안의 후방 개입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발베르데가 우월한 기동력을 기반으로 귄도안을 계속 견제하니까 귄도안도 측면으로 제대로 볼을 전달하지 못합니다. 왼쪽이 힘을 못쓰니까 더브라위너가 때때로 왼쪽 하프스페이스로 움직이면서 힘을 줘보려 했지만 마드리드의 치열한 3선 방어에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고 이게 파악이 된 시점부터 마드리드는 골키퍼에게까지 압박을 꽤 빡빡하게 넣으면서 상대에게 롱볼을 유도하고 카르바할은 의도적으로 그릴리쉬를 거칠게 다루면서 기를 못펴게 만들어버립니다. 더불어 호드리구도 아칸지에 대한 견제는 형식적으로만 가져가면서 여력을 미드필드에 도움을 주거나 측면에서의 협력 수비에 힘을 보태는 데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비니시우스의 시즌 히트맵(좌)와 이번 경기 히트맵(우). 평소 비니시우스가 가장 위협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을 이번 경기에선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굳이 수비가담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스톤스 뒤에 서있고 뒤에서 템포를 살려 나오는 상황에서도 벌리지 않고 워커와 스톤스 사이에서 움직인다.
속도를 붙여 공간을 찢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굳이 워커랑 속도 경합을 하지 않고 딱 간격이 벌어질 만큼만 뛴 후 벌어진 간격을 활용해 중앙으로 치고들어간다. 이후 오른쪽 측면까지 나가서 왼쪽으로 꺾어들어오며 왼발로 슈팅하는 굉장히 드문 모습까지 보여줬다.

 

마드리드의 공격 상황에서 평소와 가장 달랐던 건 비니시우스였습니다. 본인의 압도적인 스피드와 돌파 능력을 살리기 위해 넓게 벌려 서서 측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던 평소와 달리 이번 경기에선 본인이 가장 위협적일 수 있는 공간으로 거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팀이 폭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수비가담이 필요한 상황에선 터치라인을 따라 움직였지만 어태킹 서드에 진입하는 순간부터는 거의 중앙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는 두가지 이유 때문인데, 평소보다 주도권을 내주며 경기해야 하는 양상에서 보다 적은 기회를 굳이 빠르고 강한 워커를 상대하는데 할애하기 아깝다는 판단과 더불어 전환 상황에서 발생하는 시티의 시프트를 방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시티는 팀이 공을 쥐고 있을 때 3-2-4-1 형태로 움직이지만, 공을 잃고 수비로 전환할 때엔 4-4-2 대형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시프트의 핵심은 스톤스입니다.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굉장히 똑똑한 선수이기에 미드필더로 올라왔을 때 선택지를 대폭 확장시켜 앞서 언급했던 후방의 안정성 증대에 큰 역할을 하고, 수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기본적으로 센터백으로서 훌륭하게 기능할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미리 내려가지 않고 자리에 남아서 할 수 있는 대응도 곧잘 수행합니다. 때문에 마드리드는 스톤스와 그 주변을 흔들어서 시티의 후방 안정성을 낮추는 것을 시티 공략의 중요 목표로 삼았으며, 그걸 수행하기 위해 비니시우스를 스톤스가 계속 의식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집어넣은 겁니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게 위 그림의 네모 공간입니다. 본디 스톤스가 점유하는 공간이지만 수비 전환 혹은 마드리드의 속공 시 깊숙히 들어온 비니시우스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공간을 발견했고 이를 활용해 득점까지 성공시킵니다.

 

카마빙가는 완전히 자유롭다.
모드리치와 카마빙가의 전후반 히트맵 비교. 전반에 비해 후반전에 모드리치는 왼쪽 터치라인으로 훨씬 더 붙었고 그 움직임에서 파생된 위쪽 공간을 카마빙가가 훨씬 자주 점유하면서 중앙까지 활동폭을 넓혔다.

 

전반에 자신들이 찾아낸 공간으로 꿀을 진하게 빨아먹은 마드리드는 후반에 이걸 더 노골적으로 노립니다. 폭 확보를 위해 비니를 터치라인으로 붙이고 스톤스는 벤제마가 붙어주면서 간격을 벌렸고 모드리치가 레프트백이 볼을 받던 위치로 내려가서 볼을 받아 시티 미드필더들의 시선을 유도합니다. 순간적으로 상대의 시선을 벗어난 카마빙가는 마크맨의 뒤로 돌아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 사이의 벌어진 간격으로 들어가 편하게 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카마빙가의 마크맨이었던 베르나르두 실바가 눈치를 채고 따라붙더라도 카마빙가가 운동능력으로 실바를 찍어누르면서 마크를 떨쳐내고 전진하니까 전반에 비해 후반엔 주도권을 두고 제법 치고받는 그림이 나왔습니다. 왼쪽 위주로 게임을 풀어가서 크게 눈에 띄진 않았지만 이 과정은 반대편 카르바할도 동일하게 수행했고 카르바할은 시선을 피해서 아예 박스 앞까지 들어와서 어시스트를 기록할 뻔도 했습니다.

 

마드리드의 공략에 시달리던 스톤스와 베르나르두 실바의 전후반 히트맵 비교. 카마빙가가 날뛰던 후반전에 두 선수 모두 영향력이 확연히 줄어들었으며 전방 영역의 비중은 줄어들고 후방 비중의 비율이 늘어났다.
마드리드의 전후반 파울 획득 비교. 전반(좌)에 비해 후반(우)의 파울 획득 위치가 훨씬 일률적이다. 공략의 키였던 양 풀백이 획득한 후반전 파울 갯수는 7개 중 4개(카마빙가 3회, 카르바할 1회).

 

상대 미드필더와 수비 간격을 벌리고 풀백을 그 사이로 집어넣는 건 마드리드의 양 풀백이 그 자리에서 공을 잡아도 볼을 능숙하게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며, 이 풀백들을 시티의 양 윙이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시티 전방 자원들의 공간 분배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부가적인 장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카마빙가처럼 그걸 떨쳐내고 전진해버리면 로드리를 비롯한 시티 후방 선수들이 그 책임을 떠안아야 했는데 시티 선수들이 암만 수비를 잘 하더라도 공보다 빠를 수는 없으니 자연히 시티의 파울 갯수도 늘어납니다. 전반에 파울을 4차례, 본인들 진영에서는 단 한차례만 범했던 시티는 후반에 본인들 진영에서 7차례나 파울을 저질렀습니다. 그중 5번이 마드리드의 왼쪽을 방어하다 저지른 파울인데, 전반에 한번도 반칙이 없었던 로드리는 후반전에 똑같은 지역에서 파울을 3번 기록했고, 전반전 마드리드 진영 깊숙한 곳에서 한차례 파울을 저질렀던 베르나르두 실바는 후반전엔 본인 진영 깊숙한 위치에서만 2번의 파울을 기록했습니다. 반대편의 귄도안은 박스 앞에서 카르바할에게 파울을 저지르며 옐로 카드를 받았습니다.

 

 

 

 

 

총평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았던 경기였습니다. 유럽 탑티어 레벨에 올라 있는 팀들답게 전술적으로 상당히 빡빡하게 게임이 진행되었고 양팀 선수들도 그에 맞춰서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었습니다. 마드리드 입장에선 좀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데, 거의 대등한 수준이긴 했지만 세세하게 따져보면 약간 더 나은 경기를 했다고 볼 만 한데 스코어 차이를 내지 못한 채 원정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마음에 걸릴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시티는 한장의 교체 카드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게임을 이 상태로 마무리하는 것에 집중했는데, 홈 극강의 이미지를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론 딱 1차전 양상만 놓고 봤을 때 2차전에서 해답을 가져와야 하는 쪽은 마드리드보단 시티라고 보거든요. 시티의 홈 경기라는 점도 그렇고 2차전은 진심모드로 밀어붙일 시티와 그걸 버텨내야 할 마드리드의 양상으로 진행될 걸로 보이는데, 1차전 수준을 보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시시한 경기가 되지는 않으리란 기대가 됩니다. 부디 좋은 경기를 하길 바랍니다. 이기면 더 좋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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