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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경기 리뷰

vs 첼시(A)

 

 

 

라인업

 

 

 

마드리드가 1차전에서의 전력적 우위를 확신한 듯 완전히 동일한 라인업으로 나온 데 반해 첼시는 1차전에서 활용했던 다재다능한 공격수들 대신 캉테를 올려 갤러거와 함께 2선에 배치했습니다. 전방에는 높이가 있고 개중 육체적으로 가장 강인한 하베르츠가 나왔습니다.

 

 

 

 

 

미드필드 장악

 

 

 

결과 이상으로 경기 내용 면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던 1차전 이후 첼시의 선택은 미드필드 구역에서 수적 우위를 형성하여 마드리드의 중원 장악을 방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측면이나 전방 같은 필드의 다른 곳에서 승부를 걸기에 첼시 본인들의 퀄리티가 심히 부실하여 사실상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크로스와 모드리치가 동시에 기용되는 마드리드 특성 상 물리적인 필드 장악력은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약점이 보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캉테 히트맵. 이름을 가려놓고 보면 스털링의 히트맵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첼시는 미드필드에 배치된 2명과 2선에 배치된 2명을 통해 중원에서 수적 우위를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이 수적 우위를 통해 발생하는 이득을 본인들의 오른쪽에 쏟아부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캉테의 움직임이었습니다. 하베르츠가 알라바 쪽으로 붙으면서 알라바를 본인에게 묶어 놓으면 캉테는 알라바와 카마빙가의 사이로 침투하면서 알라바의 과부하를 유발했습니다. 이런 캉테의 움직임에 마드리드는 카마빙가를 알라바 쪽으로 당기거나 크로스를 캉테에게 붙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는데, 카마빙가를 당길 경우 측면에 넓게 벌리고 있던 리스 제임스가 완전히 노마크 상태로 풀리게 되고, 크로스가 캉테를 쫓을 경우 상대에게 미드필드 구역을 완전히 내주게 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벤제마의 패스맵과 히트맵. 발이 아예 묶였다.

 

마드리드도 이런 식의 공략을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을 겁니다. 크로스와 모드리치를 동시에 기용했을 때의 기동력 문제와 크로스 6번 기용 시 수비력 문제, 카마빙가 풀백 기용 시 포지셔닝의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약점으로 지적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생각 이상으로 무기력했던 건 전방 자원들의 발놀림이 평소보다 굉장히 무뎠기 때문입니다. 안첼로티가 팀을 맡은 이래로 마드리드는 비니시우스와 벤제마에게 굉장히 많은 것들을 의존해왔습니다. 팀이 수세에 몰리고 계속해서 얻어맞더라도 이 둘에게 어떻게든 볼을 연결하면 둘의 힘만으로 상대를 수십 미터를 끌어내리면서 팀의 숨통을 틔워주던 모습을 자주 보여줬는데, 이번 경기에선 벼랑 끝에 몰린 첼시가 공격을 위해 제임스가 아니라 포파나에게 비니시우스의 마크를 맡기는, 한번 뚫리면 뒤가 없는 굉장히 모험적인 수비 방식을 들고 나왔음에도 이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벤제마는 주말 경기에서 갈린 탓인지 시작부터 발목을 밟혀서인지 발이 굉장히 무거워 미드필더들을 거의 돕지 못했고, 비니시우스는 활동폭과 스프린트 빈도가 평소에 비해 확연히 줄어 있어 상대 수비 뒤를 제대로 위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마드리드가 수비에 성공하고 볼을 되찾더라도 첼시가 라인을 물리지 않고 마드리드의 진형을 찍어누르는 구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둘이 굼뜨고 지쳐 있으니 마드리드의 전방 수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후방에서 볼을 쥐고 있을 때 첼시의 3-2 구조가 기본적으로 꽤 견고하긴 했지만, 최소한의 지연을 해줘야 할 상황에서도 한발짝 차이로 선수를 계속 놓치면서 첼시가 후방에서부터 템포를 살려서 전방으로 볼을 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평소였다면 이렇게 뚫리더라도 비니시우스가 바로 부지런히 내려가며 수비 형태를 다시 갖췄겠지만 이번 경기의 비니시우스는 제임스를 전혀 쫓지 않았고 포파나와 하루종일 붙어있었습니다. 그러니 개개인으로 볼 때 그다지 위협적인 선수가 없어도 공격이 꽤 위협적으로 들어옵니다. 마드리드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첼시가 양 측면을 고루 활용하진 못했다는 점입니다. 첼시의 플랜이 첼시 라인업 중 그나마 가장 퀄리티가 보장이 되는 리스 제임스 방향으로 힘을 쏟는 편이기도 했고, 백3의 한 축인 포파나가 비니를 전담마크하면서 대형을 깨고 측면으로 나가는 빈도가 많았기 때문에 반대편의 찰로바는 중앙으로 더 좁혀 간격을 유지해야 했기에 첼시의 좌측면엔 그다지 많은 숫자가 배치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카르바할은 1차전에 이어 이번 경기도 상당히 편했습니다. 왼쪽이 꽉 틀어막힌 상황에서 운동능력은 내려왔어도 게임을 풀어가는 능력은 남아있는 카르바할이 별 위협 없이 발이 풀렸기 때문에 그나마 오른쪽에서 약간의 숨구멍은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한 3년 전이었다면 이렇게 편한 환경이면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게임을 다 풀어줬겠지만... 더불어 지난 시즌 8강 2차전 경기도 많이 오버랩이 됐는데, 당시 투헬은 마운트와 로프터스 치크를 활용해 미드필드에서의 수적 우위와 양 측면 공략을 모두 해내며 마드리드를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습니다. 이번 경기의 첼시 역시 찬스를 못 만든건 아니었지만 한쪽 측면만을 흔드는 것과 양 측면을 고루 흔들어대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경기 결과를 좌우했다고 볼 수 있겠죠.

 

 

 

후반전

 

 

 

첼시의 필살기에 전반 내내 시달리며 실점 위기를 겪은 마드리드는 후반전에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해왔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알라바를 뤼디거로 교체한 것과 발베르데와 모드리치의 위치를 바꿔준 것입니다. 언더사이즈라 매치업에서 버거워하던 알라바 대신 피지컬로 상대를 찍어누를 수 있는 뤼디거가 투입되면서 하베르츠가 우측으로 붙더라도 더 쉽게 밀어낼 수 있게 되었으며, 발베르데가 좌측으로 와서 캉테를 맡아주면서 비로소 크로스가 피봇으로서 닻을 내리고 축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측 하프스페이스를 틀어막으니 카마빙가도 자기 위치에서 제임스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드필드에선 발베르데를 통해 크로스의 발을 풀어주게 되니 전반 내내 비교적 자유로웠던 갤러거가 크로스를 견제하기 위해 중앙으로 들어오는 빈도가 늘어나게 되고, 갤러거를 시선에 잡아둬야 했던 카르바할이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쿠쿠레야를 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면 호드리구가 수비 부담을 덜고 쿠쿠레야의 뒤를 노릴 수 있게 되죠.

 

 

후반 첫 득점이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스로인 상황에서 좌측면으로 쏠린 마드리드 선수들을 따라 첼시 선수들이 한쪽 측면으로 우르르 몰린 사이 벤제마가 잠깐 자유를 얻었고 간만에 전방 축으로서 기능하여 반대편 넓은 공간으로 공을 전달합니다. 갤러거는 크로스를 쫓았고 찰로바는 실바와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 기준 오른쪽으로 넘어간 상황이라 왼쪽을 지키는 건 쿠쿠레야 한명밖에 없습니다. 고맙게도 쿠쿠레야가 본인 뒤쪽의 호드리구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빨간 네모 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뛰어나가준 덕에 밀리탕은 파란 네모 공간으로 손쉽게 공을 보낼 수 있었고 허허벌판인 공간을 찰로바의 얼척없는 태클 덕에 호드리구가 별 방해 없이 달려 득점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려웠던 흐름에서 한골을 먼저 뽑아내자 그 이후는 너무 쉬웠습니다. 실점 이후로 첼시의 밸런스는 무너졌고 공격적인 선수들을 다수 투입해 흐름을 바꿔보려 했으나 본래 잡고 나왔던 미드필드에서의 우위라는 컨셉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경기 흐름이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반면 마드리드는 상대의 공격적인 교체 이후 벤제마를 빼고 추아메니를 넣으며 미드필더 숫자를 늘려 중원 장악에 나섰고 미드필드에서의 우위를 확보하게 되자 게임 흐름을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골은 마드리드 경기를 많이 본 분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했던 과정에서 나온 득점이었죠. 방향과 속도와 길이를 원하는 대로 조절하며 거의 1분 가까이 볼을 가지고 놀다 상대 빈틈이 생긴 곳으로 단번에 볼을 찔러넣고 속도 붙여서 마무리까지 가는. 챔스 토너먼트 단계에서 이정도 장면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상대가 많이 무너져내렸다는 뜻이고 실점 이후 잡힌 티아구 실바의 표정과 우르르 빠져나가는 관중들이 현장 분위기를 대변한 셈입니다.

 

 

 

총평

 

 

스코어 이상으로 엄청난 차이가 났던 1차전을 극복해보려고 애를 썼고 나름대로 위협도 줬습니다만 팀 전체에 쌓여있는 경험치의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던 경기였습니다. 앞에서 투헬 칭찬을 했지만 이번 램파드도 플랜 자체는 준수하게 짜왔다고 봅니다. 다만 그걸 수행할 스쿼드 퀄리티의 차이가 보다 심원했기에 차이가 더 커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캉테는 개인적으론 공격적으로도 상당히 좋은 선수라 생각하고 실제로 꽤나 위협적이었지만 공격 자원을 그렇게 많이 수집하고도 캉테보다 나은 선수가 없다는 내부 판단이 나왔다는 점은, 비록 제가 상대를 응원하는 입장이지만 좀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마드리드는 최근 호드리구를 기용하면서 비로소 우측면에도 제대로 힘을 실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앞으로의 상대들에게 꽤 신경쓰일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르바할의 전성기였던 3연패 시절 이후로 이만치나마 좌우 밸런스가 맞는 건 아마 19-20시즌 중간에 잠깐 빼고는 거의 처음인 것 같고 최근의 크로스의 중용은 아마 이를 최대한 살려내기 위함일 겁니다. 카세미루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6번에다 쓰고 있으니까요. 4강 상대인 시티의 전력이 상당히 강력해 보입니다만 사실상 끝난 리가 레이스 덕에 남은 리가 경기들을 실험과 관리의 장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은 그나마 호재가 아닐까요. 첼시에게 나름 좋은 예방 주사를 맞은 것 같은데 준비 잘 해서 부끄럽지 않을 경기를 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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