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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레알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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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 없다고

 

경기에 대해선 크게 얘기할 게 없습니다. 그거 돌려봐야 화밖에 더 나나요. 그냥 시즌 초부터 얘기했던 문제들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다 튀어나오니까 저렇게까지 간 거구나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탕의 한계, 근본없는 압박, 체계가 없는 횡적 접근, 비-벤에 모조리 기대는 전진 루트, 거기서 파생되는 형편없는 좌우 밸런스, 결론적으로 앞뒤좌우가 다 따로 노는 각자도생 축구가 되어버리니 핵심 하나 빠지면 바로 팀이 병신이 되어버리죠. 벤제마 없으면 당연히 어려워요. 안첼로티가 아니라 지단이었어도 마찬가지일 테고, 공인된 전술가 소리 듣는 투헬이나 나겔스만같은 양반들이 감독이라도 저정도 선수가 빠지면 머리털 쥐어뜯습니다. 그래도 안첼로티가 아니었으면 이 참사는 안 났을 거에요. 왜냐면 저 사람들은 부분부분의 디테일을 살려서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일 시스템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거든요. 지금 팀은 그런 디테일을 시스템으로 만들지 못했고 선수들이 온전히 맡아 처리하지도 못해요. 일부만 선수 클래스에 기대어 이루어지고 있고 아예 방치 or 생략되는 부분들도 있죠. 그러니까 상대 수준이 어떻든 그 빈 부분만 건드릴 능력이 있으면 게임이 진흙탕으로 가고 특정 선수들의 분전 혹은 필살기에 기대게 되는 거에요. 그렇다고 내줄 거 내주면서 실리라도 확실하게 챙기냐? 요새 그런 축구 잘 먹히지도 않지만 그것도 못하죠. 파리 전 딱 한번 잘 먹혔는데 그것도 파리가 만만찮은 븅신팀이라 그랬던 거고요.

 

 

 

이런 축구를 꾸준히 보는 것 이상으로 제가 현타가 오고 짜증이 나는 건 이런 식의 축구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욕받이 선수들과 그에 대한 처사, 그리고 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더 눈뜨고 보기 힘든 수준에 도달했다는 거에요. 아무리 이 판의 생리가 잘하면 뭘 해도 빨아주고 못하면 욕부터 박고 본다지만 엉망진창인 판에서 고생만 죽도록 하면서도 경기 뛸 때마다 적폐로 몰려서 팀의 모든 문제가 이들에게서 기인한 양 쫓아내야 할 선수 취급하는 데 진절머리가 납니다. 이 꼬라지 만든 감독은 본인 무능을 가려보겠다고 하프타임 교체나 해대면서 적폐몰이에 불쏘시개나 넣어주고 있고요. 하물며 그 적폐취급 당하는 선수들이 10년에 가깝게 별 잡음 없이 팀에 묵묵히 헌신해온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더 그래요.

 

 

 

엊그제인가 레매 코멘을 보니 축구를 음식에 비유하시던데, 저도 감독질을 요리에 비유를 좀 하자면, 감독이 팀을 완성시키는 과정과 요리사가 요리를 완성시키는 과정이 꽤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맛을 내려면 좋은 재료(선수)가 필요하고, 올바른 레시피(방향성)가 있어야 하며, 재료를 레시피에 맞춰 알맞게 조리하는 조리 스킬(전술적 디테일)까지 모두가 잘 어우러져야 할 겁니다. 근데 근래의 안첼로티의 작태와 팬들의 반응을 보면, 매운 음식이 트렌드라며 매운 라면을 시켰더니 진순에 고춧가루 툭툭 뿌려 갖다주는 요리사와 그걸 먹고 고춧가루가 맵질 않아서 라면이 맛이 없다고 고춧가루 욕을 신나게 하는 손님을 보는 느낌이에요.

 

 

 

물론 저도 요새 고춧가루가 예전같지 않다는 데 동의하고, 자꾸만 매워지는 음식 트렌드를 따라가려면 더 매운 고춧가루를 들여와야 한다는 얘기에도 부정할 생각이 없어요. 근데 애초에 매운 라면을 끓이려면 진순이 아니라 매운맛 라면을 준비해야죠. 진순에 캡사이신 들이붓는다고 원하는 맛이 나나요? 후반에 몇몇 분들 그렇게나 부르짖던 모빙발 나오니까 뭐가 좀 달라지던가요? 카르바할 빠지니까 오른쪽이 좀 막혀요? 뭣도 안됐어요.

 

 

 

그렇다고 쓰던 고춧가루가 원래는 아주 알싸한 맛이었냐 하면 그것도 사실 아니죠. 크로스가 발베르데마냥 35km로 뛰어다니면서 램파드처럼 중거리를 두자릿수씩 꽂아대던 자원이었나요? 아님 카세미루가 알론소처럼 롱패스 갈겨대면서 다비즈마냥 종횡무진 필드를 누벼대던 선수였나요? 카르바할? 카르바할이야 피지컬이 워낙 돋보이던 선수니까 그 피지컬적 격차가 눈에 띄게 드러나긴 하죠. 근데 그렇다고 전성기 때도 혼자서 모든 걸 다 이겨내던 수준에까진 미치지 못했어요. 어느 정도 조화가 일어날 때 그걸 극대화시키던 거였죠. 반대로, 이번 경기에서 부스케츠가 날뛰고 다니던 게 이 팀 미드필더보다 월등히 빨라서 그랬던 걸까요?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모드리치가 아직도 크-카보다 빠르고 많이 뛰니까 기동력 얘기가 안 나오나요? 아뇨. 따로따로 아사리판 축구가 되니까 볼과 함께 속도를 살리는 능력이 돋보이기 때문이지 물리적인 이유는 아니에요.

 

 

 

제가 걱정되는 건 그거에요. 병신같은 레시피 속에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 거듭 말하지만 모드리치 폼이 당연히 크로스보다 낫고, 카마빙가는 크카보다 확연히 빠르고, 카르바할 대체자 겸 후계자는 무조건 구해야 해요. 근데 결국 베이스가 진순이면 한계가 옵니다. 지금같은 다 따로 노는 각자도생 축구에서는 당연히 빠르고 많이 뛰는 선수들이 유리하고 또 필요합니다만 연동 없이 개개인의 기동력에 팀을 맡겨버리면 한쪽이 무너질 때 우르르 박살나는거죠. 특히나 카마빙가같은 어린 친구들에겐 이게 치명적일 수 있어요. 지금이야 기대 심리에 크-카에 대한 반발 심리까지 더해져서 몇몇 분들에겐 중원의 골든 키 수준으로 대우받는데 이런 빡센 경기들 몇번 더 치르다 보면 이번 경기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경기가 반드시 나오고 그러면서 뭐야 얘도 별 거 없네란 반응도 무조건 따라올 겁니다. 이게 누적되면 잘못하면 선수 망가져요. 케어라도 잘 해주면 모르겠는데 지금 안첼로티가 욕받이 선수들한테 하는 꼬라지 보면 그런 쪽으로 큰 기대는 안 하는게 좋을 것 같고요.

 

 

 

아무튼 결론은 그렇습니다. 매운 라면을 끓이고 싶으면 기본 레시피부터 손을 봐라. 그리고 병신 레시피에다 대고 고춧가루 탓도 좀 적당히 해라. 뭐 그런 얘기입니다. 빠르고 많이 뛰면 무조건 좋아요. 그걸 부정할 순 없어요. 근데 거기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거고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할 게 팀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구조에요. 일단 열라면 정도는 끓여 봐야 얼마나 더 매워져야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거죠. 끓여놓고 보니 좀 더 매워야겠어서 고춧가루를 바꾸자는 건 납득할 수 있지만 진순에다 대고 고춧가루 탓하는 억까는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네요. 생각해보니 차라리 속이 편한 것 같기도 해요. 개쳐발렸으니 이런 얘기도 대놓고 하지 애매하게 이기거나 아깝게 지거나 했으면 또 속만 태웠을 테니까요. 견적 제대로 받아보자고 8강에서 아예 바이언 만나잔 얘기도 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옆동네에서 견적서 뽑아주는 게 기분은 좀 나쁩니다만 어쨌든 견적이 나왔으니 팀도 일 좀 제대로 하길 바랍니다. 안첼로티도 차릴 정신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정신 좀 차리고, 보드진도 사태의 심각성을 좀 알았으면 이번 여름엔 정말 부지런하게 움직일 준비 하길 바라요. 오드리오솔라 복귀같은 개소리좀 집어 치우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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